이 책을 읽고 정말 이런저런 생각에 잠기게 됐는데요. 어쩐지 부정보단 공감을 하게 되더라고요. 정말 이게 지금은 없는 일이라고 할 수 있나? 라기엔 어디선가 실제로 들어본 적이 있는 대사들... 저도 나이 때문인지 결혼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저희 가족이나 친척 중에선 질문조차 하시는 분들이 없는데(다들 무엇이든 제가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하시고 믿어주십니다.), 간혹 저를 불러 세워 놓고 "왜 결혼을 못했느냐? 어디 문제가 있는 거냐? 그렇게 불효를 저질러서 되겠냐? 요새 젊은이들은 이래서 문제다." 하면서 호통을 치는 분들이 계십니다. 또는 "몸집이 작아서 유아 교육과 같은 전공 했을 줄 알았는데 엔지니어셨다니 정말 의외네요.". 아마 그런 사람들이 겪은 세상, 그들의 세계관에 끼워져 그 속에서 어울리지 못한 주인공의 이야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책은 장편 소설이지만 현대소설이라 그런지 꽤나 빠르게 읽히는 편입니다. 한국이 배경인 경우엔 배경이 더 상상이 잘가서 그런 것 같습니다. 속이 뻥 뚫리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여운이 남는 책이어서 추천하는 책입니다.
지연(주인공)은 평범한 삶은 살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사회에서 정해진 듯한 일반적인(?) 통례를 지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남편이 외도를 한 바람에 이혼을 하게 됩니다. 잘못 한 남편으로부터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한 채 이혼했는데, 어쩐지 지연의 부모님은 지연이 이혼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숨기고 부끄러워합니다. 위로받고 싶어 제 속을 이야기해도 돌아오는 건 살벌한 폭언들이죠. 그런 지연은 모두를 피해 어릴 적 좋은 기억이 있는 희령으로 이사합니다. 그곳에서 지연의 외할머니를 만나게 됩니다. 단 번에 할머니인 줄 알 수 없을 정도로 긴 공백이 있었지만 어렴풋한 좋은 기억들 때문인지 의지하게 됩니다. 할머니는 지연이 증조모를 빼다 닮아 단번에 손녀임을 알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연은 종종 할머니를 만나면서 증조모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지연은 왜 엄마가 할머니를 오래도록 없는 사람처럼 살았는지, 왜 엄마는 지연을 이해하려 하지 않는지를 조금씩 알아가게 됩니다.
인류는 무리를 지어 살아가지만 왜 이토록 서로를 정형화하지 못해 힘들어하는지, 왜 또 그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고 힘들어하는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 서있음에도 서로의 색깔을 비난하는 건지.. 의문스러워하지만 또 한켠으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누군가 다 괜찮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사실은 좀 잘 이해하고 어울리고 싶었다고 말하는 책인 것 같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구절 중 세가지를 기록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P.14 /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P. 168 / 그렇게 한 해를 괴롭게 지내다가 네가 놀러 왔을 때 얼마나 반갑고 좋았던지 몰라. 세상에는 끝나는 것들만 있다고 생각했거든. 근데 너를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겠더라.
P. 271 / 나는 머리속에 동그라미 하나를 그리고 그 안에 평범이라는 단어를 적었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은 삶, 두드러지지 않는 삶, 눈에 띄지 않는 삶, 그래서 어떤 이야깃거리도 되지 않고, 평가나 단죄를 받지 않고 따돌림을 당하지 않아도 되는 삶, 그 동그라미가 아무리 좁고 괴롭더라도 그곳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엄마의 믿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잠든 엄마의 숨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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